갑인자 - 1434년 > 장영실선생 업적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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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인자 - 1434년

 갑인자(1434년)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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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인년에 주자소(鑄字所)에서 만든 동활자

-1420(세종2)에 만든 경자자(庚子字)의 자체가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려워지자 좀더 큰 활자가 필요하다하여1434(세종16) 갑인년(甲寅年)에 왕명으로 주조된 활자이다.

-이천·김돈·김빈·장영실·이세형·정척·이순지 등이 두 달 동안에 20여 만의 큰 중자(中字)인 대자(大字)와 소자(小字)를 만들었다.

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글자의 크기가 고르게 조립되었으며, 자판의 빈틈을 납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를 이용하였으므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답다. 하루에 활자를 찍어 내는 양이 40여 장에 달하여 경자자보다 배 이상의 생산력을 가질 수 있었다. 


 

대자 1.4X1.6 cm, 소자 1.4X0.8 cm

세종대왕이 기존에 만들었던 경자자(庚子字)는 자체가 너무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렵다며 1434년 갑인년(甲寅年)에 좀 더 큰 활자를 새로 만들라고 명하여 제작된 금속활자이다. 주요 제작자는 장영실과 이순지진양대군 등이다.
글자체 자본(字本)은 중국 성인들의 고서들인 효순사실(孝順事實), 위선음즐(爲善陰騭), 논어(論語)에서 따왔고, 3종의 책에 없는 대부분 글자체들은 진양대군 유(晉陽大君 瑈, 훗날의 세조)가 쓴 글로 보충하였다. 다 합쳐서 총 20만 자를 주조하였다.
처음으로 대나무나 나무 조각으로 빈틈을 메우는 정교하고 튼튼한 조립식 인판틀을 채용하였으며, 기존 경자자의 배 이상인 하루에 40여 지를 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.
또한 이 활자를 바탕으로 훗날 세조가 즉위하자 우리나라 최초의 한글활자도 만들었다고 전한다. 이 활자는 만든 해와 자체(字體)가 갑인자와 전혀 다르므로 '갑인자병용한글활자' 또는 처음으로 찍은 책의 이름을 따서 '월인석보한글자'라고 부른다.이후 갑인자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총 6번 개주하면서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. 갑인자로 인쇄된 주요 책으로는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(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), 근사록(近思錄), 사마방목(司馬榜目), 경국대전 권3(經國大典 卷三), 대승기신론소(大乘起信論疏), 자치통감강목12·27·37·42(資治通鑑綱目 卷12·27·37·42), 묘법연화경(妙法蓮華經), 고려사절요(高麗史節要), 해동제국기(海東諸國記) 등이 있으며, 조선 금속활자를 대표하는 자료로 인정받는다. 


- 출처 : 장영실과학관 - 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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