갑인자 - 1434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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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1-10-25 02:33 조회 207 댓글 0본문
갑인자(1434년)
갑인년에 주자소(鑄字所)에서 만든 동활자
-1420년(세종2년)에 만든 경자자(庚子字)의 자체가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려워지자 좀더 큰 활자가 필요하다하여1434년(세종16년) 갑인년(甲寅年)에 왕명으로 주조된 활자이다.
-이천·김돈·김빈·장영실·이세형·정척·이순지 등이 두 달 동안에 20여 만의 큰 중자(中字)인 대자(大字)와 소자(小字)를 만들었다.
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글자의 크기가 고르게 조립되었으며, 자판의 빈틈을 납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를 이용하였으므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답다. 하루에 활자를 찍어 내는 양이 40여 장에 달하여 경자자보다 배 이상의 생산력을 가질 수 있었다.
대자 1.4X1.6 cm, 소자 1.4X0.8 cm
세종대왕이
기존에 만들었던 경자자(庚子字)는
자체가 너무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렵다며 1434년
갑인년(甲寅年)에
좀 더 큰 활자를 새로 만들라고 명하여 제작된 금속활자이다. 주요
제작자는 장영실과 이순지, 진양대군 등이다.
글자체
자본(字本)은 중국 성인들의
고서들인 효순사실(孝順事實),
위선음즐(爲善陰騭), 논어(論語)에서
따왔고,
이
3종의
책에 없는 대부분 글자체들은 진양대군 유(晉陽大君
瑈,
훗날의 세조)가
쓴 글로 보충하였다.
다
합쳐서 총 20만
자를 주조하였다.
처음으로 대나무나
나무 조각으로 빈틈을 메우는 정교하고 튼튼한 조립식 인판틀을
채용하였으며,
기존 경자자의
배 이상인 하루에 40여
지를 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.
또한
이 활자를 바탕으로 훗날 세조가 즉위하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활자도
만들었다고 전한다.
이
활자는 만든 해와 자체(字體)가
갑인자와 전혀 다르므로 '갑인자병용한글활자'
또는
처음으로 찍은 책의 이름을 따서 '월인석보한글자'라고
부른다.이후
갑인자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총 6번
개주하면서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. 갑인자로
인쇄된 주요 책으로는 신편음점성리군서구해(新編音點性理群書句解),
근사록(近思錄),
사마방목(司馬榜目), 경국대전 권3(經國大典
卷三), 대승기신론소(大乘起信論疏),
자치통감강목
권12·27·37·42(資治通鑑綱目
卷12·27·37·42), 묘법연화경(妙法蓮華經), 고려사절요(高麗史節要), 해동제국기(海東諸國記)
등이
있으며,
조선
금속활자를 대표하는 자료로 인정받는다.
- 출처 : 장영실과학관 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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